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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경설 (설)

by happyssony 2024.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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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설(鏡說)

이규보

 

거사(居士)가 거울 하나를 갖고 있었는데 먼지가 끼어서 흐릿한 것이 마치 달이 구름에 가리운 것 같았다. 그러나 거사는 아침저녁으로 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용모를 가다듬곤 했다.

한 나그네가 거사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든지, 아니면 군자가 거울을 보고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당신의 거울은 안개가 낀 것 같아서 얼굴을 비추어 볼 수도 없고, 그 맑은 것을 취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오히려 계속하여 비춰 보고 있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거울이 맑으면, 얼굴이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얼굴이 못 생겨서 추한 사람은 오히려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습니다. 만일 한번 보면 반드시 깨뜨리고야 말 것이니 차라리 먼지가 끼어 흐릿하게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할 것인즉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먼지로 흐리게 된 것은 겉만 침식할 뿐 거울의 맑은 바탕을 없어지게 하지는 않는 것이니, 만일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만난 뒤에 닦고 갈아도 늦지 않습니다. , 옛날에 거울을 보는 사람들은 그 맑은 것을 취하기 위함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보는 것은 오히려 흐린 것을 취하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이상하다 합니까?"

 

나그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구절 풀이

 

* 얼굴이 - 좋아하겠지만 : 일종의 자기 도취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간 행위의 본질이다.

* 잘 생긴 사람은 - 나을 것입니다 : 거사가 흐린 거울을 택한다는 의미는, 세상에는 결점 가진 사람이 더 많으므로 지나친 결벽과 청명만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그 결점을 이해해 주는 태도를 취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참고로, 이규보는 무신 정권하의 정치적 혼란기에 이러한 태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 먼지로 흐리게 - 것입니다 : 거울의 본성은 맑은 것이나 먼지가 끼면 흐려진다는 현상을 말하면서, 인간에 있어서도 본성이 흐린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통찰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 ! 옛날에 - 어찌 이상스럽게 생각합니까? : 인간의 결점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열린 마음을 상징하는 진술이다.

 

 

핵심정리

 

* 갈래: 고대 수필

* 성격: 관조적, 교훈적

* 진행 방식: 문답식

* 특징: 대화체, 번역체의 문체. 격이 높고 심오한 철학적 경륜 포함

* 주제: 사물의 심층을 이해하는 통찰력(삶에 대한 관조적 자세), 처세훈(處世訓)적 의식과 현실에 대한 비판

* 출전: <동국이상국집>

 

거울의 의미

 

경설이란 수필은 작자의 주관적 처세관을 밝힌 것이다. 다만, 그 방식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그것을 다시 객관화된 하나의 이야기 구조 속에 용해하여 일종의 우화적 기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작품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비유적 의미와 상징성을 띠고 있어 그 해석이 어떤 사실의 기술처럼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고 상당한 애매성을 수반한다.

 

이 수필에서 거울은 흐린 거울맑은 거울로 구분하여 제시되는데, 그것은 각각 거울을 이용하는 사람의 못생긴 얼굴잘생긴 얼굴에 대응되어 있다. 그리고 작중 화자는 못생긴 얼굴의 주인공으로 흐린 거울을 애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울은 작자가 반려로 삼고자 하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작자가 나아가고자 하는 세계, 또는 작자를 망아 인정해 주는 어떤 대상일 수도 있다. 너무 맑고 결백해서 상대방의 흠이나 결함을 용서하지 못하는 인간 관계에 대한 비판도 내재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전체 이야기의 맥락과 상관없이 거울은 인간의 본성과 영혼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누구나 사람의 본성은 맑고 깨끗하지만, 세상의 먼지와 티끌이 끼어 그 본성이 흐려진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설 1

 

이 수필은 먼지 낀 거울을 그대로 사용하는 한 거사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처세에 관한 관조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글이다.

 

거울의 본성은 원래 맑은 것이지만, 먼지가 끼면 흐려진다는 현상을 말하면서 인간에게도 본성이 흐린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통찰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거울'이 주는 교훈은 유연한 처세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글은 거사(작자자신)가 객()과의 문답을 통하여 맑은 거울보다 흐린 거울이 오히려 자신에게 어울린다는 역설적 논리를 편 글이다. 이는 작자의 처세관을 거울에 비유하여 드러낸 것으로, ''의 특징과 함께 작자의 처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글이다.

 

해설 2

 

이 작품의 우화의 형식을 빌려 우리들에게 교훈을 전달하고 있는 글이다. 흔히 거울은 자신의 외양을 비추어 보는 생각하고 있는데, 이 작품의 필자는 거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거울을 통해 사물과 삶의 보다 근원적인 의미를 발견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거사는 자신이 거울을 대함에 있어 맑은 것을 취하기 보다, 오히려 그 희미한 것을 취하는 뜻을 말하였는데, 그 까닭은 세상에는 잘난 사람보다 못난 사람이 많아 그 못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야 마는 맑은 거울은 용납되지 못하기 때문이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세상에는 흠과 티끌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상례인데도 지나치게 결백하고 청명한 태도로만 일관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식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시대 상황에 따른 처세술을 드러내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작가는 이를 통하여 세상에는 사물과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배척되는 가를 말하면서,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의 자기 나름의 처세훈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해설 3

 

이 작품은 일차적으로 처세훈적인 의식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내 부연하여 현실에 대한 풍자적 의미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처세훈적 의미로 파악해 보면 거울의 본성은 깨끗하고 맑은 것이나 먼지가 끼면 흐려진다는 현상적 원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거울의 본성이 그러하듯이 인간에 있어서도 본성 자체가 흐린 사람이 있겠는가 하는 통찰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거사가 흐린 거울을 택한다는 의미는 세상에는 오히려 흠과 티끌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상례인데 지나치게 결벽하고 청렴한 태도만으로 일관하기 어려움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박절하지 않은 인간 관계와 허물까지도 수용하는 처세의 필요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또한 이규보가 살던 시대가 내우 외환으로 어렵던 시대임에 비추어 볼 때 흠과 티끌을 탓하여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지 못해서는 살아가는 지혜에 이를 수 없음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이규보가 자기 자신의 글 쓰는 행위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 것으로 흐린 세태에 결벽의 정신으로 대결하면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주의적 태도를 풍자적 시각으로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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