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가(雇工歌)
허전
작품해제
조선 중기 임진왜란 직후에 허전이 쓴 노래로, 국사(國事)를 한 집안의 농사일에 비유하여, 정사에 힘쓰지 않고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는 관리들을 집안의 게으르고 어리석은 머슴에 빗대어 통렬히 비판한 작품이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글 전체가 우의적 수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처음의 한 어버이’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를, ‘여드레갈이’는 곧 조선의 팔도(八道), ‘고공(雇工)’은 나라의 녹을 받아먹는 신하를, ‘화강도’는 임진왜란 때의 왜적을, ‘농사’는 나랏일(國事)을, ‘밥사발’은 신하들이 지급받는 녹봉을 각각 비유한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임진년의 환란 때 왜구들에게 온 삼천리강산이 무참하게 유린되어 온 산하와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음에도, 밥그릇 싸움에만 열중하며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 않는 신하들의 무능하고 부패한 모습을 ‘머슴’에 비유하여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그리하여 ‘머슴’들로 지칭된 그들 신하들이 각자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여 이상적인 사회와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작자의 숨겨진 목적일 것이다.
집의 옷밥을 언고 들먹ᄂᆞᆫ 저雇工아
우리집 긔별을 아ᄂᆞᆫ다 모로ᄂᆞᆫ다
비오ᄂᆞᆫᄂᆞᆯ 일업ᄉᆞᆯᄌᆡ ᄉᆞᆺᄭᅩ면셔 니ᄅᆞ리라
처음의 한어버이 시롬ᄉᆞ리 ᄒᆞ려ᄒᆞᆯᄌᆡ
仁心을 만히쓰니 사ᄅᆞᆷ이 졀로모다
플ᄲᅥᆺ고 터을닷가 큰집을 지어내고
셔리보십 장기쇼로 田畓을 긔경(起耕)ᄒᆞ니
오려논 터밧치 여드레 ᄀᆞ리[八日耕]로다
자손에 傳繼ᄒᆞ야 代代로 나려오니
논밧도 죠커니와 雇工도 근검(勤儉)터라
구절 풀이
* 언고 : 얹어 놓고. 제쳐 놓고 * 들먹 ᄂᆞᆫ : 빌어먹는 * 고공(雇工) : 머슴,'조정의 신하'를 뜻함 * 우리 집 긔별 :'조선의 역사'를 비유한 말 * 일 업 ᄉᆞᆯᄌᆡ : 일이 없을 때, 일이 없고 한가할 때 * ᄉᆞᆺᄭᅩ 면셔 : 새끼를 꼬면서 * 처음의 한어버이 :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를 가리킴 * 사롬 ᄉᆞ 리 ᄒᆞ 려 : 살림살이 하려 * 모다 : 모여서 * ᄲᅥᆺ 고 : 깎고, 베고 * 터을 닷가 : 터를 닦아,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여 * 셔리 : 갈아 놓은 논의 바닥을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 * 보습 : 땅을 갈아 흙덩이를 일으키는 데 쓰는 농기구. 삽 모양의 쇳조각으로 쟁기나 극젱이의 술바닥에 맞추어 끼운다. * 기경(起耕) : 땅을 갈아 논밭을 만듦 * 오려논 : 올벼를 심은 논 * 여드레 ᄀᆞ 리 : 8일 동안 갈 만한 넓은 땅,조선 팔도’를 의미함 * 전계(傳繼) ᄒᆞ 야 : 전하고 계승하여
현대어 풀이
제 집 옷과 밥을 두고 빌어먹는 저 머슴아. 우리 집 소식(내력)을 아느냐 모르느냐? 비 오는 날 일 없을 때 새끼 꼬면서 말하리라. 처음에 할아버지께서 살림살이를 시작할 때에, 어진 마음을 베푸시니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 풀을 베고 터를 닦아 큰집을 지어내고, 써레, 보습, 쟁기, 소로 논밭을 가니, 올벼논과 텃밭이 여드레 동안 갈 만한 큰 땅이 되었도다. 자손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내려오니, 논밭도 좋거니와 머슴들도 근검하였다.
저희마다 여름지어 가ᄋᆞᆷ여리 사던것슬
요ᄉᆞ이 雇工들은 혬이어이 아조업서
밥사발 큰나쟈그나 동옷시 죠코즈나
ᄆᆞᄋᆞᆷ을 ᄃᆞᆺ호ᄂᆞᆫ듯 호슈을 ᄉᆡ오ᄂᆞᆫ듯
무ᄉᆞᆷ일 걈드러 흘긧할긧 ᄒᆞᄂᆞᄉᆞᆫ다
너희ᄂᆡ 일아니코 時節좃ᄎᆞ ᄉᆞ오나와
ᄀᆞᆺ득의 ᄂᆡ셰간이 플러지게 되야ᄂᆞᆫᄃᆡ
엇그ᄌᆡ 火强盜에 家産이 蕩盡ᄒᆞ니
집ᄒᆞ나 불타붓고 먹을ᄭᅥᆺ시 전혀업다
큰나큰 셰ᄉᆞ(歲事)을 엇지ᄒᆞ여 니로려료
金哥李哥 雇工들아 ᄉᆡᄆᆞᄋᆞᆷ 먹어슬라
구절 풀이
* 여름지어 가 ᄋᆞᆷ 여리 : 농사지어 부유하게(풍요하게) * 혬 : 생각, 사려, 분별 * 밥 사발 : 나라에서 주는 녹봉을 뜻함 * 죠코 즈나 : 좋거나 나쁘거나 * ᄃᆞᆺ호ᄂᆞᆫ : 다투는 * 호슈(戶首) : 우두머리 * ᄉᆡ오ᄂᆞᆫ : 시기하는 * 걈드러 : 감겨들어 * 흘긧흘긧 : 눈을 홀기며 반목질시하는 모습 * 시절(時節)좃 ᄎᆞ ᄉᆞ 오나와 : 시절조차 사나워, 흉년조차 들어서 * ᄀᆞᆺ 득의 : 가뜩이나 * 셰간 : 살림 * 플러지게 : 줄어들게 * 화강도(火强盜) : 왜적을 일컬음 * 셰사(歲事)을 : 세간을 * 니로려료 : 일으키려는가?
현대어 풀이
저희들이 각각 농사지어 부유하게 살던 것을, 요새 머슴들은 생각이 아주 없어서, 밥그릇이 크러나 작거나 입은 옷이 좋거나 나쁘거나, 마음을 다투는 듯 우두머리를 시기하는 듯, 무슨 일에 얽혀들어 힐끗거리며 반목을 일삼느냐? 너희들 일 아니하고 흉년조차 들어서, 가뜩이나 내 살림이 줄어들게 되었는데, 엊그제 강도를 만나 가산이 탕진하니, 집은 불타 버리고 먹을 것이 전혀 없다. 크나큰 살림살이를 어떻게 해서 일으키려는가? 김가 이가 머슴들아, 새 마음을 먹으려무나.
너희ᄂᆡ 졀머ᄂᆞᆫ다 혬혈나 아니ᄉᆞᆫ다
ᄒᆞᆫ소ᄐᆡ 밥먹으며 恢恢ᄒᆞ랴
ᄒᆞᆫᄆᆞᄋᆞᆷ ᄒᆞᆫᄯᅳᆺ으로 녀름을 지어스라
ᄒᆞᆫ집이 가음열면 옷밥을 分別ᄒᆞ랴
누고ᄂᆞᆫ 장기잡고 누고ᄂᆞᆫ 쇼을몰니
밧갈고 논살마 벼세워 더져두고
ᄂᆞᆯ됴흔 호ᄆᆡ로 기음을 ᄆᆡ야스라
山田도 것츠럿고 무논도 기워간다
사립피 ᄆᆞᆯ목나셔 볏겨ᄐᆡ 셰올셰라
七夕의 호ᄆᆡ씻고 기음을 다ᄆᆡᆫ후의
ᄉᆞᆺᄭᅩ기 뉘잘ᄒᆞ며 셤으란 뉘엿그랴
구절 풀이
* 헴 혈나 : 생각하려고 * 매양 : 항상, 늘 * 회회(恢恢) : 서로 다투는 모양 * 녀름 : 농사, ‘티름’으로 된 것도 있음 * 가 음 열면 : 부유하게 되면, 풍년이 들면 * 분별(分別)랴 : 차별하랴. 인색하게 하랴 * 살마 : 갈아 * 셰워 : (벼를) 세워, 심어 * ᄂᆞᆯ : (호미의) 날 * ᄆᆡ 야스라 : (김을) 매자꾸나 * 것츠럿고 : 거칠어졌고 * 기워간다 : (잡초 등이) 무성하여간다 * 사립피 : 도롱이와 삿갓 * ᄆᆞᆯ 목 나셔 : 말뚝을 놓아서, (허수아비를) 박아 세워서 * ᄉᆞᆺᄭᅩ 기 : 새끼 꼬기 * 셤 : 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은 가마니
현대어 풀이
너희는 젊다 하여 생각조차 아니 하려고 하느냐? 한 솥에 밥 먹으면서 항상 다투기만 하면 되겠느냐? 한 마음 한 뜻으로 농사를 짓자꾸나. 한 집이 부유하게 되면 옷과 밥을 인색하게 하랴? 누구는 쟁기를 잡고 누구는 소를 모니, 밭 갈고 논 갈아서 벼를 심어 던져두고, 날카로운 호미로 김매기를 하자꾸나. 산에 있는 밭도 잡초가 우거지고 무논에도 풀이 무성하다. 도롱이와 삿갓을 말뚝에 씌워서 허수아비를 만들어 벼 곁에 세워라. 칠월 칠석에 호미 씻고 기음을 다 맨 후에, 새 끼는 누가 잘 꼬며, 섬은 누가 엮겠는가?
너희ᄌᆡ조 셰아려 자라자라 맛스라
ᄀᆞ을 거둔후면 성조(成造)를 아니ᄒᆞ랴
집이란 내지으게 움으란 네무더라
너희 ᄌᆡ조을 내짐작(斟酌) ᄒᆞ엿노라
너희도 머글일을 分別을 ᄒᆞ려므나
명셕의 벼ᄅᆞᆯ넌들 됴흔ᄒᆡ 구름 ᄭᅵ여 볏뉘을 언ᄌᆡ보랴
방하을 못ᄶᅵ거든 거츠나 거츤오려
옥ᄀᆞᆺᄐᆞᆫ 白米될쥴 뉘아라 오리스니
구절 풀이
* 셰아려 : 헤아려 * 자라자라 : 서로서로, 자주자주 * 맛스라 : 맡아라 * ᄀᆞ 을 거둔 : 추수한 * 성조(成造) : 집을 짓는 것 * 움 : 겨울철에 채소를 넣어 두기 위해 땅을 파고 거적 따위로 덮은 것 * 머글 일 : 먹고 살 일 * 볏뉘 : 햇볕 * 오려 : 올벼, 이른 벼
현대어 풀이
너희들의 재주를 헤아려 서로 서로 맡아라. 추수를 한 후에는 집 짓는 일을 아니하랴? 집은 내가 지을 것이니 움은 네가 묻어라. 너희 재주를 내가 짐작하였노라. 너희도 먹고 살 일을 깊이 생각하려무나. 멍석에 벼를 널어 말린들 좋은 해를 구름이 가려 햇볕을 언제 보겠느냐? 방아를 못 찧는데 거칠고도 거친 올벼가 옥같이 흰쌀이 될 줄을 누가 알겠는가?
너희ᄂᆡ ᄃᆞ리고 새ᄉᆞ리 사쟈ᄒᆞ니
엇그ᄌᆡ 왓던도적 아니멀리 갓다ᄒᆞᄃᆡ
화살을 젼혀언고 옷밥만 닷토ᄂᆞᆫ다
너희ᄂᆡ 다리고 팁ᄂᆞᆫ가 주리ᄂᆞᆫ가
죽조반(粥早飯) 아ᄎᆞᆷ져녁 더ᄒᆞ다 먹엿거든
은혜란 ᄉᆡᆼ각아녀 제일만 ᄒᆞ려ᄒᆞ니
혐혜ᄂᆞᆫ 새들이리 어ᄂᆡ제 어더이셔
집일을 맛치고 시름을 니즈려뇨
너희일 ᄋᆡᄃᆞ라ᄒᆞ며셔 ᄉᆞᆺᄒᆞᆫᄉᆞ리 다ᄭᅩ래라
구절 풀이
* 새 ᄉᆞ 리 : 새 살림 * 엇그 ᄌᆡ 왓던 도적 : 엊그제 쳐들어 왔던 도적, ‘왜적’을 말함 * 귀눈 업서 : 듣고 보지를 못 해서 * 모르관 ᄃᆡ : 모르기에 * 화살을 젼혀 언고 : 화살을 모두 잊어버리고, 적과 싸울 방비를 전혀 하지 않고 * 닷토 ᄂᆞᆫ 다 : 다투는가? 싸우는가? * 팁 ᄂᆞᆫ 가 : 추운가 * 죽조반(粥早飯) : 조반 전에 먹는 죽 * ᄉᆡᆼ 각 아녀 : 생각하지 않고, 헤아리지 않고 * 혬 혜 ᄂᆞᆫ : 헤아릴 줄 아는 * 새 들이리 : 새 머슴을 * 어더이셔 : 얻어서, 새로 고용하여 * 니즈려뇨 : 잊을 수 있겠는가? * ᄋᆡᄃᆞ라ᄒᆞ며셔 : 애달파하면서 * ᄉᆞᆺᄒᆞᆫᄉᆞ 리 : 새끼 한 뭉치 * ᄭᅩ 괘라 : 꼬도다
현대어 풀이
너희들 데리고 새 살림 살고자 하니, 엊그제 왔던 도적이 멀리 달아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너희들은 귀와 눈이 없어서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인지, 방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옷과 밥만 가지고 다투느냐? 너희들을 데리고 행여 추운지 굶주리는지 염려하며, 죽조반 아침저녁을 다 해다가 먹였는데, 은혜는 생각지 않고 제 일만 하려 하니, 사려 깊은 새 머슴을 어느 때에 얻어서, 집안일을 맡기고 걱정을 잊을 수 있겠는가? 너희 일을 애달파하면서 새끼 한 사리를 다 꼬았도다.
핵심정리
연대: 조선 선조 때(임진왜란 직후)
성격: 교훈적, 경세적(警世的)
주제: 나태하고 이기적인 관리들의 행태 비판
해설
농가의 한 어른이 바르지 못한 머슴들을 깨우치기 위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사를 게을리 하는 조정 대신들의 무능함을 깨우치고 경계하는 글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내용 중 '우리 집'은 '우리나라', '처음의 한 어버이'는 '이태조', '여드레가리'는 조선 팔도, '화강도'는 '왜적을 각각 은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내온 내력을 소개하고 조정의 대신들이 정사를 게을리 하고 당파싸움만 일삼았기 때문에 결국 왜적의 침략을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임진왜란 직후에 허전이 쓴 노래로,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그렇게 무참히 유린당하고 유교적 이상이 깨어진 비참한 현실에 직면하여, 그러한 현실을 수습하려 들지 않는 신하들의 나태한 모습을 은유적 수법으로 잘 형상화하였다. 이 작품의 화답가(和答歌)로 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가 있다.